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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야옹아.

 

오늘도 날이 맑아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좋은 밤일까?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으니까 조금 궁금해지네. 순찰은 잘 돌고 있겠지? 그 조용한 밤에 너를 혼자 둬서 조금 미안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만 블랙캣, 너는 나보다 용감하잖아? 그러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어. , 너라면 금방 아니라면서, 마이 레이디가 없으니 외롭다고 징징거리며 달라붙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를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아?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헛된 건 아니었나 봐.

 

네가 지키고 있는 도시는 오늘도 평화롭겠지. 평소에 둘이 지키던 걸 혼자 하려니 힘들겠지만, 너는 사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애잖아. 게다가, 내가 부탁까지 하고 왔는데. 아무리 장난만 치는 너라도 나와의 약속은 잘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너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 영웅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걱정인 건 파리가 제대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야. 네겐 치유의 힘이 없으니까, 파리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내 전부를 바쳐서 앞으로도 계속, 파리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주자고 마음 먹었거든. 네가 내 본모습을 볼 기회를 빼앗은 것과 더불어서 내 부모님께, 내 친구들에게 내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게 된 건 굉장히 미안하지만. 기왕 영웅 노릇 마지막까지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내 전부와 맞바꿔서 이뤄낸 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네. 네게 묻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쉬고 있지 못하지만, 혼자 남은 네게 불평할 건 아닌 것 같네.

 

있지,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혹시,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너 예전에도, 내가 악어의 입에 뛰어들었을 때 엄청 걱정했었잖아. 너 답지 않게 장난도 안 치고 진지하게 안아 왔을 땐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그런 너니까, 이번에도 혹시 현실을 버거워하고 있는 건 아닐지, 무심코 걱정하게 되네. 하지만 난 너를 알아. 너는 강한 아이잖아. 그러니까 조금 헤매도, 금방 네가 나아갈 길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건데, 너 꽤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아니, 오해하지는 마?! 어디까지나 너랑 함께 지내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혹시나 내게 죄책감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얼른 털어버리고. 멋있는 너니까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블랙캣? 항상 네가 나를 구해주기만 했는데, 적어도 마지막은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아직도 그건 후회하지 않아.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야.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는 건데, 네가 들고 있던 장미 꽃다발. 혹시 나를 위한 거였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수신인이 사라져버려서 어떡해? 사실 원래의 나라면, ‘안 됐네~ 얼른 빨간 장미꽃에서 하얀 국화꽃으로 바꿔와!’ 라고 해야겠지만, 이번엔 좀 봐주라. 레이디버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건 너 뿐인데. ..벌써부터, 나를 잊어 달라고 하긴 싫어. 아하하, 나 답지 않나? 뭐 그럴지도 모르지. 인간이 죽을 때가 되면 바뀐다고 했는데, 나는 이미 그 때를 지나버렸잖아. 그럼 바뀔 법도 하지. 이건 농담이고, 그냥. 아무리 영웅으로 사라졌다고는 해도, 나도 그냥 사람이잖아. 죽기 싫고, 잊혀지기 싫어. 그러니까, 나도 아직 내가 받아야할 게 국화 꽃다발이라는 걸 인정하지 싫다구.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포기해도, 너는, 너만큼은. 포기하지 않아줬으면 해. ..방금까지, 포기해 달라고 해놓고,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해놓고. 너무, 너무 이중적이고, 제멋대로네. .

 

블랙캣. 앞으로 레이디버그는 존재하지 않을 거야. 적어도 네가 그 세상에 존재하는 순간까지는. , 마지막까지 영웅으로 남은 대신에, 이 순간까지 파리를 지키고 있는 대신에. 지금도 레이디버그로 남아있거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내가 네가 볼 수 있는 마지막 레이디버그야. 난 욕심쟁이야. 내 파트너인 너에겐, 아니 그 이상의 소중한 친구인 네겐 유일한 레이디버그가 나이길 바랐어. 쉽게 말하자면 너는 네 파트너에게 코 꿰어서, 다신 새 파트너를 맞을 수 없을 거고, 새로운 레이디버그를 만날 수 없을 거라는 거지. 네가 항상 들러붙던 거 상대해줬으니까, 이 정도는 봐주는 거다? 내숭 떨기 없기. 이 정도 욕심 정도는, 너만 아는 나의 투정으로 해줘. 나 사실, 죽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부모님이랑 더 살고 싶었고, 친구들이랑 더 웃고 싶었고 좋아하는 애한테 고백도 하고 싶었어. 너랑 더 영웅 노릇도 하고 싶었어. , .. 더 살고 싶었어. 이젠 안 되는데.

 

고마워, 항상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 너는 최고의 파트너야, 최고의 친구야, 블랙캣. 미안해, 네게 마지막까지 너무 큰 짐을 맡기고 떠나서. 네게 좋지 못한 마지막을 보여서. 네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를 잊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너에게 들리지 않을 걸 아니까 하는 말이지만, 만약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너를 사랑했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그 정도로 너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 한 번도 너를 향한 마음이 장난이었던 적 없어. 네가 나를 상냥하게 대해줘서 기뻤고. 너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이 즐거웠어. 마리네뜨였던 나도, 레이디버그였던 나도, 사실은 너를 아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 너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야옹아, 네가 여기 올 때가 되어서, 더 이상 네가 블랙캣이 아니게 되고, 내가 레이디버그가 아니게 되면. 그 때는 네가 전에 말한 것처럼 함께 식사하러 가자. 네가 준비한 이벤트도 즐겨보고, 대화도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서 더 알아가자. 아주 무섭고 힘들었을 서로를 안아주자. 웃어주자. 우리는 결국 마지막까지 영웅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그 영웅 노릇 끝나면, 그럼, 그 때 우리 다시 한 번 만나서, 서로를 위한 시간을 보내자. 우린 그만한 자격 있잖아.

 

너는 지금 당장 내게 올 수 없겠지. 너는 파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블랙캣, 기다릴게. 아무것도 없는 이 곳에서. 너를 생각하면서 기다릴게. 레이디버그가 없는 블랙캣은 조금은 바보일텐데, 나한테 오는 길이라도 잊어버리면 어떡해. 앞으로의 계획이라도 짜놓지 뭐.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러니 늦지 않게, 빠르지 않게 와.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울지 말고, 날 잊지도 말고 와. 마지막까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보고 싶다, 블랙캣. 내 파트너.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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