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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마이 레이디.
오늘은 바람이 적당하게 불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좋은 밤이야. 아, 순찰 제대로 안 돌고 땡땡이 친다고 화내지는 말고. 열심히 돌다가 힘들어서 잠시 굴뚝에 앉아 쉬고 있는 것뿐이니까! 새까만 하늘에 총총히 박혀 있는 작은 별을 보고 있으면, 난 항상 밤하늘을 닮은 네 머리카락을 떠올리는데. 마이 레이디는 어떠시려나? 내 생각이 좀 날까? 왠지 부끄러움 많은 나의 레이디버그라면, 그런 건 네 꿈에서나 말하라며 그 긴 손가락으로 내 방울을 딸랑거릴 것 같네.
오늘도 이 도시는 평화로워. 내가, 아니. 너와 내가 지키고 있으니까. 갑자기 사라져버린 너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어. 이런이런, 모두가 너만 찾으니까, 아무리 나라도 질투 난다고. 마이 레이디는 나만이 애타게 목놓아 부르며 찾을 수 있는데 말이야. 있지, 요즘엔 나 혼자 악당을 처리하는데도, 이 도시는 상황이 정리되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어. 알다시피 내겐 치유의 힘이 없잖아? 그런데, 무당벌레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파리를 우리가 지키려는 모습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참으로 이상하지, 너는 여기 없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네가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고 있어. 네가 사정이 있어서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네 파트너이고, 네가 말했듯 그 이상의.. ..소중한 친구잖아. 그런 나는 알 수 있어. 레이디버그, 너는 이미…
…아니, 아니! 이 말은 취소! 왜 내가 굳이 이런 생각을.. 너는, 아직 우리와 같은 세상에 있잖아, 그렇지? 내가 본 너의 그 모습이, 너의 그 말이. 그토록.. 짧은 그 순간. 마지막일리가 없잖아. 우리 레이디버그가 얼마나 강한데. 파리를 지키는 영웅이고! 게다가, 레이디버그가 없으면, 블랙캣도 없다고. 마이 레이디는 똑똑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 거라고 믿어. 얌전히 기다리면, ‘집 잘 지키고 있었어, 야옹아?’ 라고 이야기하면서 날 찾아와주겠지. …그럴 거잖아, 그치?
그보다 말이야, 레이디버그.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이렇게 오래 헤어져 있을 거면서, 나한테 건넨 마지막 말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줘.’ 라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항상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 ‘나의 소중한 파트너, 내 친구.’ , ‘보고 싶을 거야.’ 라고 말한 것 정도로 봐 줄 것 같았어? 그렇다면 나를 잘 아네, 역시 마이 레이디. 네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난 꼼짝도 못하겠다고. 파리는 걱정하지 마. 다른 누구도 아닌 레이디버그의 유일한 파트너이자 멋진 히어로인 블랙캣님이 네 몫까지 맡고 있을 테니까. 너의 소중한 가족, 친구들, 그리고.. 네가 짝사랑한다던 그 애까지. 최고의 영웅이 지키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치지 않게 돌아와.
그렇지만 너무 늦지는 말라고, 마이 레이디? 생각보다 고양이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동물이란 말이야. 주인이 돌봐주지 않으면 꿱, 하고 죽어버릴 수도 있어. 게다가, 나는 아직 네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단 말이야. 우선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고 싶어. ..있지, 마이 레이디. 난, 아드리앙 아그레스트라고 해. 어쩌면 우린, 진짜로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 그런데 난 아직 너의 정체를 몰라. 그러니까.. 내게 말해줘. 돌아와서. 네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리고 말이야.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 때, …늦어서 미안하다고. 너에게 그 때 필요했던 건, 선물 같은 게 아니라 내 도움이었을 텐데. 너의 유일한 파트너이면서, 눈치 채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하다고. 날 지켜줘서, 고맙다고. 많이 아팠을 텐데, 무서웠을 텐데. 물러설 수도 없었을 텐데. 넌 마지막까지 영웅이었으니까.
그 때 사갔던 빨간 장미 꽃다발 말인데, …받을 사람이 없어지니까, 항상 들고 다니고 있어. 아, 물론 꽃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으니 걱정 말고! 생각해보니까, 항상 꽃 한 송이만 줬지, 다발로 준 적이 없더라고. 그래서 주려고 했었지. ..사실 이걸 들고 갈 시간에 널 도왔어야 했는데. 난 역시 네가 없으면 바보인가 봐, 레이디버그. 지금도 내가 들고 있는 이 꽃은, 너를 닮았어. 나의 행복이자 행운인, 내 인생 의 구원자인 레이디버그, 너와. 그래서 난 이 꽃을 놓을 수도, 버릴 수도 없어. 그런데, 꽃이 점점 시들어 가. 안 되는데, 나의 레이디에게는 가장 훌륭한 꽃을 건네 주고 싶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시들어. …마치, 너 같이.
있잖아, 레이디버그. 미안해. 미안해. 사실, 사실 나는 알고 있어. 내가, 너의 파트너가 모를 리가 없지. 너는 이제 내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걸. 다시는 내가 너를 만질 수도 없고, 그 때 아프고 무서웠을 너를 안아서 위로해주는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내가 제대로 전하지 못한 고백도 네게 영원히 닿지 못하리라는 것도. 내가 너를 지켰어야 했어.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라고 했잖아. 너를 위해서라면 그깟 목숨 하나, 아니. 너를 위해서라면 그 아홉 개의 목숨도 전혀 아깝지 않은데. 내가 죽더라도, 너를 살렸어야 하는데. 네가 나의 인생인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네가 전부 사라질 때까지. 이제 난 어쩌면 좋지. ..아무리 고양이가 밤눈이 밝다고 해도. 찾아왔던 너라는 빛을 잃어서, 더욱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단 말이야. 무서워, 레이디버그. 네가 보고 싶어. 네가 누구인지 알지 않아도 좋아. 네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좋아. 필요하다면 너를 사랑하지도 않을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 이 마음조차도 찢어버릴게. 그러니까 제발, 제발 돌아와줘. 레이디버그, 레이디버그.. ..사랑해서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해요. 너를 욕심내서 미안해. 마지막까지 너의 짐이 되어서 미안해. ..미안해, 지금 이 순간 조차도 사랑해서 더 미안해.
지금 당장 너를 쫓아가서 용서를 빌고 싶은데, 너를 안아주고 싶은데. 나는 갈 수 없어. 레이디버그 없이는 블랙캣도 없지만, 난 지금 갈 수 없어. 난 지금 없어질 수 없어. 레이디버그, 나는 네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한 이 도시를 지켜야 하니까. 나는, 네가 사랑하는 가족을, 친구를, 네가 사랑하는 그 애를. 지켜야 하니까. 그게 네가 나한테 부탁한 거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모두가 너를 잊어도, 나는 영원히 너를 잊지 않아. 다른 레이디버그도 필요 없어. 유일한 나의 레이디버그, 마이 레이디. 편히 쉬어. 부디, 이 바보 같은 고양이가 네게 찾아가는 길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나를 기다려줘.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사랑해서 미안해.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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